
쌍용 코란도 패밀리는 한국 자동차 역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모델이다. 이 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SUV’라는 개념은 대중에게 낯설었고, 오프로드 차량은 군용이나 특수 목적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코란도 패밀리는 이 경계를 허물었다. 험로를 달릴 수 있으면서도 가족을 태울 수 있는 차, 도심과 자연을 동시에 오갈 수 있는 차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 것이다. 이 차량은 국산 SUV의 출발점이자, 한국 레저 문화의 물꼬를 튼 결정적인 존재였다.
세단 중심 시장에서 등장한 낯선 질문
1990년대 초반 한국 자동차 시장은 세단이 절대적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형·준중형·중형 세단으로 이어지는 차급 구조는 이미 공고했고, 소비자 선택 역시 그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높은 차체’, ‘사륜구동’, ‘험로 주행’ 같은 개념은 일반 소비자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쌍용 코란도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모든 길이 포장도로일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자동차는 반드시 세단이어야만 할까?” 코란도 패밀리는 이 질문에 대한 실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답이었다.
코란도 패밀리는 기존의 군용·특수차 이미지에서 벗어나, 일반 가정이 선택할 수 있는 SUV를 목표로 기획되었다. 이름에 ‘패밀리’가 붙은 이유 역시 분명했다. 이 차는 혼자만의 장비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타는 자동차를 지향했다.
오프로더의 본능과 일상의 균형
코란도 패밀리는 기본적으로 강인한 뼈대를 가진 차량이었다. 높은 지상고와 견고한 차체 구조는 험로 주행을 염두에 둔 설계의 결과였고, 이는 기존 세단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안정감을 제공했다. 비포장도로, 눈길, 진흙길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자동차의 또 다른 가능성’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 차량의 진짜 특징은 오프로더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내는 가족 단위 이동에 무리가 없도록 구성되었고, 짐을 싣기에도 충분한 공간을 확보했다. 주말에는 캠핑과 여행을 떠나고, 평일에는 도심을 오가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균형이 코란도 패밀리의 핵심 가치였다.
이 균형은 이후 ‘도심형 SUV’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코란도 패밀리는 그 초기 형태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모델이었다.
레저 문화의 시작과 자동차의 역할 변화
코란도 패밀리가 등장하던 시기, 한국 사회에는 서서히 여가와 레저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있었다. 주 5일 근무가 본격화되기 이전이었지만, 주말을 활용해 교외로 나가려는 움직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계속 갈 수 있는 차’였다.
코란도 패밀리는 이러한 욕구에 정확히 부합했다. 캠핑 장비를 싣고 강변으로, 산으로 향하는 장면은 이 차를 통해 처음으로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더 이상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수단이 아니라, 활동의 범위를 넓혀주는 도구가 되었다.
이 경험은 이후 SUV가 단순한 차급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산 SUV에 대한 신뢰를 만들다
코란도 패밀리는 ‘국산 SUV도 믿고 탈 수 있다’는 인식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모델 중 하나였다. 이전까지 오프로드 차량은 외제 모델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 차는 국산 브랜드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견고한 내구성과 비교적 단순한 구조는 장기간 사용에서도 안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는 SUV가 단순히 멋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실제로 쓰임새가 분명한 자동차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신뢰는 이후 무쏘로 이어지는 쌍용 SUV 라인업의 토대가 되었고, 쌍용자동차를 ‘SUV 전문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쌍용자동차 정체성을 확립한 모델
코란도 패밀리는 쌍용자동차의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히 만든 차량이었다. 세단 중심의 경쟁 구도 속에서, 쌍용은 자신만의 영역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이 차를 통해 쌍용은 ‘강인함’, ‘실용성’, ‘야외 활동’이라는 키워드를 브랜드 이미지로 축적했다. 이는 이후 무쏘, 렉스턴으로 이어지는 SUV 계보의 철학적 출발점이었다.
코란도 패밀리는 단순한 한 모델이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을 결정한 기준점이었다.
국산 SUV 시대를 연 조용한 개척자
오늘날 SUV는 한국 자동차 시장의 중심 차급이 되었다. 도심형 SUV부터 대형 SUV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그 시작점에는 분명 코란도 패밀리가 있다. 이 차량은 SUV가 한국인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현실화했다.
코란도 패밀리는 완벽한 차는 아니었다. 승차감이나 정숙성 면에서는 세단에 비해 한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차가 던진 질문과 제시한 방향은 이후 수많은 모델을 통해 보완되고 확장되었다.
그래서 코란도 패밀리는 ‘성공작’ 이전에 ‘개척자’로 기억되어야 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했던 자동차. 쌍용 코란도 패밀리는 국산 SUV 시대의 문을 연, 가장 정직한 출발점이었다.